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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기네스북 기록, 글러미 시상식 Thriller 7부 - 블록버스터 시절카테고리 없음 2021. 8. 6. 17:47
마이클 잭슨이 혼신의 힘을 다해 Thriller를 녹음한 1982년은 음반 판매가 부진한 불경기였다. 대형 음반사들은 일제히 매출이 줄면서 적자를 기록하면서 직원을 해고하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퀸시 존스와 제작진이 녹음하는 동안 이번 앨범은 200만 장 팔리면 대박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이를 들은 마이클이 평소와 달리 격노할 정도로 시장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모두가 팝 시장은 한물갔다고 말할 무렵 혜성처럼 등장한 스릴러가 게임의 룰을 바꿔버렸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가 이처럼 높은 벽을 넘은 것은 그동안 흑인과 백인 취향으로 확연히 나뉜 대중음악 장르를 통합하고 다양한 크로스오버를 통해 인종과 성별, 나이를 뛰어넘는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몸담았던 R&B, 행크, 디스코, 소울 같은 전통적인 흑인 장르뿐 아니라 백인 아티스트 폴 매카트니와 록 기타리스트 에디 반 헤일런과의 콜라보를 통해 팝 발라드, 록, 헤비메탈까지 오간 마이클 잭슨의 끊임없는 스펙트럼은 폭넓은 수요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Thriller가 무찌른 인종과 장르의 벽은 이후 등장한 스타 뮤지션이 만들어내는 세일즈 숫자 단위를 바꿔버릴 만큼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음반 한 장이 음악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했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정도였다. Thriller를 발매한 CBS 레코드사의 1983년 순이익(earning)은 전년 대비 5배로 상승했다.
마이클 잭슨이 낸 Thriller는 한 앨범이 블록버스터급에서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스타 이미지를 반영한 각종 CF 출연,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음반 홍보, 뮤직비디오 제작, 머천다이징 판매, 영상매체 진출을 통해 히트 음반의 시너지를 최대한 확장하는 방식을 마돈나 프린스 같은 후발주자도 함께하면서 팝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시장 규모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로 벌크업됐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는 단순한 인기 음반이나 팝 음악이 아니었다. 스릴러의 인기와 영향력은 이를 뛰어넘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뒤덮었다. 마이클 잭슨의 춤과 노래, 역동적인 이미지는 냉전이 막바지에 이른 1980년대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에 미국 자본주의와 자유 시장경제의 우월함을 널리 알리는 소프트파워를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미국 정부나 주류사회에 반항적이고 적대적이었던 대부분의 흑인 가수나 아이콘과 달리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극도로 점잖고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 마이클 잭슨은 백인 주류와 중산층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상품이었다.
Thriller는 그래미 시상식으로 올해의 앨범과 베스트 팝 보컬 퍼포먼스, 비이트가 올해의 레코드와 베스트 록 보컬 퍼포먼스, 빌리 진이 베스트 R&B 보컬 퍼포먼스와 베스트 리듬 앤드 블루스 송,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가 공동으로 올해의 프로듀서 브루스 스웨디언이 베스트 엔지니어. 여기에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가 영화 E.T. 오디오북 내레이션을 통해 최우수 어린이 레코딩까지 받았다.
기네스북에 Thriller가 가장 잘 팔린 음반과 그래미 시상식에서 8관왕을 차지한 것은 마이클 잭슨의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가슴 벅찬 성취였다. 20대 중반이었지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20년 전 활약한 베테랑 뮤지션 MJ는 이로써 더 이상 승승장구하는 톱스타의 자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팝 황제(King of Pop)가 누구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마이클 잭슨!이라고 환호하는 세계가 펼쳐졌다.